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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져널레이닝 

​칙촉

 

   태양이 하늘위에 박혀 발광했다. 미쳐버린 열기를 나무 하나가 겨우 막아낸다. 그 밑에 늘어진 성윤이 반 쯤 감긴 눈에 힘을 주어 떴다. 사방에서 부서지는 햇빛들이 각막을 때려댔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간신히 확보한 시야 안에는 태양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중인 장준이 있었다. 넌 덥지도 않냐. 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온도에 기가 질려 물었다. 덥죠, 당연히. 근데 지금은 좀 덥고 싶어서요. 장준은 그러면서 햇살보다 더 쨍한 웃음을 짓는다. 어우. 눈부신게 두 개가 됐어. 성윤이 고개를 살레살레 젓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장준이 옆에 앉는 기척이 들렸다. 빤한 시선이 살갗에 닿는게 느껴져서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입을 열었다.

 

   "뭘 봐."

   "와 귀신.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찍은 건데. 성윤이 어깨를 으쓱였다. 귀를 찌르는 매미 울음소리가 과할 정도로 대화의 공백을 메웠다. 성윤이형. 다시 말문을 연 장준의 말꼬리가 묘하게 늘어졌다. 주로 쓸데없는 말인 척 중요한 얘기를 할 때 나오는 말투였다. 기어이 성윤의 눈이 떠졌다. 고개를 돌려 장준을 바라봤다. 뭔데. 말해. 장준이 이리저리 눈을 굴리더니 이내 입술을 가로로 죽 늘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됐어요. 별거 아녀요."

   "니 그딴 식으로 말했을 때마다 별거 아니었던 적 한 번도 없거든? 좋은 말로 할 때 불어라."

   "이번엔 진짜 아니라니깐요?"

   "어. 안 믿어. 빨랑 불어."

 

   아 하여간 진짜.. 장준이 꿍얼댔다. 성윤은 여전히 시선을 장준에게 고정한 채였다. 반팔을 걷어 올린 저와 달리 애진작 민소매를 입고 나온 장준의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얬다. 저거 진짜 하루 종일 햇빛 쏘인 사람 피부가 맞나.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굴곡 잡힌 하얀 팔에 끈적한 손이 달라붙었다. 심지어 얘는 땀도 안 났네. 남은 한쪽 손으로 물기 어린 제 구레나룻을 만지작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만져지는 팔이 티 나게 뻣뻣해져서 다시 시선을 올려 장준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곧바로 눈이 마주친다.

야.. 뭐냐? 성윤이 닿은 손을 떼어냈다. 그에 맞춰 장준이 빠르게 눈을 피했다. 뭐가요. 장준이 잡혔던 팔의 손을 쥐락펴락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표정 뭐냐고. 두 번째로 물었음에도 장준의 입은 오히려 더 꾹 다물렸다. 뭐라 더 말하려는데 그러기 전에 장준의 입이 먼저 열렸다. 비가 내릴 것 같아서요. 소나기가 오려나 봐요. 여전히 해가 빛을 가려내는 구름 하나 없이 하늘을 활보하는데 장준은 그런 소릴 했다. 웃긴 건, 그 말의 저의를 단번에 꿰뚫어 낸 성윤이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불과 며칠 전의 기억이 있었다. 완연하게 구름이 진 날이었다. 성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형은 사랑을 뭐라고 생각해요? 맥락 없는 질문이었다. 확실한 건 눅눅한 원룸 구석에서 창밖이나 내다보고 있을 때 나올만한 말은 아니었다는 거다. 성윤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장준을 돌아봤다. 너 요즘 보는 드라마 생겼니? 안 어울리게 왜 이래. 나 지금 소름 돋았다. 괜히 오바스레 팔뚝을 쓸어댔다. 장준이 눈을 깜박였다.

 

   "아뇨 진지하게요. 사랑에도 종류가 많잖아요. 형이 생각하는 사랑은 뭘까 궁금해서요."

 

   눈을 보니 과연 진심이었다. 장준은 정말로 성윤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다. 허. 성윤이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빗방울이 창문에 하나둘 자욱을 남겨내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글쎄다. 사랑은.. 소나기?"

   "에이. 마침 비 오니까 대충 둘러대는 거 아니고?"

   "아니거든 임마."

 

   봐봐라.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피하지도 못하고, 당황스럽고 짜증나지. 맞으면 찝찝하기까지 해. 근데 또 막. 발에 스치는 풀냄새랑 창문에 떨어지는 빗자국들 때문에 쓸데없이 낭만적으로 느껴지니까. 얼추 맞는 것 같지 않냐? 말을 할 수록 성윤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더해졌다. 솔직히 맞았다, 대충 둘러대는게. 인스타 감성 글귀나 찾아읽는 사춘기 중삐리도 아니고 누가 평소에 그딴 걸 생각하고 있겠냐고. 근데 말하다 보니 꽤 그럴듯하지 않은가. 나 말빨에 좀 재능이 있나. 폰팔이나 한 번 해볼 걸 그랬어. 속에서 하는 혼잣말들이 허공을 둥둥 배회했다. 장준에게선 아직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봤는데도 말이 없는 장준은 여전히 성윤에게 어색했다. 괜스레 마룻바닥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에 맞춰 점점 센 강도로 창문에 부닥치는 빗소리가 우울하기보단 어딘가 경쾌했다. 그게 좀 신기했던 것 같다. 꼭 이장준같네. 소리 없이 킥킥대고 있는데 장준이 흐음, 하고 말문을 열었다. 형 생각보다-

 

 

   "감성적인 면이 있네요. 맨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굴더니."

   "죽는다 진짜.“

 

   묘하게 열이 뻗쳐 대충 손에 잡히는 걸 장난스레 던졌다. 근데 막상 던져놓고 보니 꽤나 묵직해서 어, 하고 뒤늦게 당황 섞인 음성을 내뱉는데 나이스캐치. 하고 기막히게 받아내는 모습에 안심했다. 제가 던진 건 장준의 바이크 헬맷이었다. 장준은 그걸 받아들고 툭툭 먼지 터는 시늉을 하더니 곧이어 거기에 제 머리통을 끼워 넣었다. 성윤이 얼이 빠져 물었다. 너 지금 그거 타려는 건 아니지? 그러자 뭐가 문제냐는듯 동그랗게 뜨이는 눈에 말문이 턱, 막혔다. 저게 요즘 진짜 미쳤나.

 

   "죽으려면 뭔 짓을 못하겠냐."

   "비 오는 날 오도방구 좀 탄다고 누구 안 죽걸랑요."

   "그래 장준아. 나는 네가 안전불감증의 대표국가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자랑스럽다.“

 

   아니 누가 같이 타달래? 그냥 저 혼자 빗속을 뚫고 바이크 타는 비련의 남자주인공 놀이 좀 해보겠다는데 디게 뭐라 그러네요. 궁시렁대면서도 헬맷을 쑥 벗어 내려놨다. 정돈되지 못한 머리칼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성윤이 쯧, 하고 혀를 찼다. 가만있어 봐. 거리낌 없이 손을 뻗어 서툰 손길로 붕붕 뜬 머리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마주치는 눈. 방금까지 성윤이 정리해주던 머리카락 밑에 얌전히 자리한 순한 눈이 성윤의 눈과 맞부딪혀 관통한다. 비슷한 높이의 시선, 그러나 확연히 다른 눈빛. 주인 손을 탄 강아지 같은 눈빛 속에 부자연스럽게도 집요함이 일렁였다. 성윤이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손을 떼어냈다. 니는, 그 눈을 좀. 문장이 채 완성되지 못하고 흩어졌다. 금세 호기심에 찬 아이의 눈으로 돌아온 장준이 물었다. 눈 왜요? 저 또 눈 이상하게 떴어요? 깜박이는 눈이 부담스러웠다. 어 존나. 그렇게 대꾸하고는 손끝으로 이마를 슬쩍 밀어냈다. 아직까지도 불편했다. 저 눈이.

 

   "아- 바이크 타고 사연 있는 척 하는 건 물 건너갔고. 그럼 저 그냥 얌전히 발로 걸어서 나갔다 올게요.“

   "나는 진짜 이해가 안 간다 장준아. 비 오는 날은 집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거 모르니."

 

   전 일부러 비 맞을라고 가는건디. 곱게 꽂혀있는 우산들을 그냥 지나치고 슬리퍼에 발을 밀어넣으며 장준이 말했다. 그니까 왜. 진심으로 이해가 안 간다는 말투였다. 현관 손잡이를 쥐어 잡은 장준이 뭔가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돌아섰다. 형이 생각하는 사랑은 소나기랬으니까..

 

   "형 사랑 좀 받아보려고?"

 

 

   그러면서 한쪽 다리를 들어 하트총까지 쏴댔다. 윙크는 덤이었고. 성윤이 금세 표정을 썩혔다. 허헝 웃은 장준이 도어락 버튼을 눌렀다. 장난이에요. 금방 갔다 올게요. 금세 가라앉은 목소리가 마치 다른 사람의 것 같았다. 뭔가 말해 볼 틈도 없이 문이 쿵, 닫혔다. 그 문을 뚫어낼 기세로 노려보다가 이내 거뒀다. 그래. 그냥 평소의 이장준이었다. 엉뚱하고, 종잡을 수 없는. 그저 그렇게만 생각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지금. 눈앞의 어린놈은 제가 했던 말 그대로 저를 사랑한다 말하고 있었다. 여기에 갖다 붙이려고 나한테 그딴 걸 물어봤구나. 성윤의 이가 갈렸다. 도무지 받아줄 수가 없었다. 여전히 머리 위로 햇볕이 따갑게 내리꽂혔다. 성윤은 그보다 더한 눈으로 장준을 응시했다. 너, 그 비 당장 멈춰. 난 그거 같이 맞아주지도 못하고, 너한테 줄 우산 따위도 없어. 그러니까 씨발 네가 알아서 네 머리 위에 해 끌어다 띄우던지 물 떠다 놓고 그쳐달라 빌던지 해. 성윤이 씨근댔다.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대가리를 통째로 전자렌지에 처박아 뎁힌 것처럼 머릿속이 후끈거렸다. 다가오는 장준의 얼굴이 흐릿했다. 약한 힘이 손목을 붙잡았다.

 

   "형. 성윤이형. 진정해요."

   "놔. 나 잡지 마."

 

   손목에 닿았던 열기가 순순히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귓가에 꽂히는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형. 그냥 소나기예요. 금방 지나갈 거라고요. 저 혼자 비 맞는 거 좋아해요. 우산 없어도 감기 안 걸려요. 그러니까 제발. 건드리지 말라는 말을 착실히 알아들은 손이 갈 곳을 잃고 허공에 맴돌았다.

 

   "숨 좀, 제대로 쉬어요."

 

   겨우 그런 한숨 같은 말이 덧붙여졌다. 시선에 걸리는 투박한 손이 기어코 주먹을 쥐어냈다. 장준의 얼굴을 마주하길 포기한 성윤이 뒤 돌아 걸었다. 얼마 가지 않아 금세 집 앞이었다. 도어락을 누르는 손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꾹꾹. 마구잡이로 숫자패드를 눌러댔다. 몇 번에 걸쳐서야 문이 열렸다. 그대로 침대에 몸을 내던졌다. 따라 들어오는 발걸음이 없었다. 씨발.. 혀끝에 욕지거리가 감돌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서로를 구원해내는 관계에서 사랑은 곧 재난이었다. 적어도 성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장준과 성윤은, 서로에게 오래된 세상이었고 전부였다. 물론 둘 다 천애고아도 뭣도 아니었고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한 집에 같이 들어앉아 있는게 숨 쉬듯이 익숙했고 존재 하나만으로도 버팀목이 됐다. 단지 그뿐이다. 성윤은 장준의 품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건 아마 장준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치고 그런 건 의외로 태풍도 아닌 고작 소낙비같은 사랑 따위에 손쉽게 쓸려 내려간다. 덧댈수록 우스워지는 게 사랑이었다. 우리 사이가 고작 사랑으로 정의될 수 있어? 나에게 너라는 사람을 아무렇게나 대충 뱉어낸 소나기 따위의 비유로 설명할 수 있을까 장준아. 넌 그게 돼? 나는 못하겠어. 자신이 없어. 소나기는, 너무 쉽게 쏟아지고 쉽게 그쳐 버려. 성윤은 그게 그렇게 그쳐 버렸을 때 쓸려가고 남은 잔해들을 떠안을 엄두가 안났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래서 미처 보지 못했다. 창밖으로 구름이 비를 안고 몰려들었는데. 소나기라기엔 너무나도 크고 깊은 구름이. 그게 그대로 성윤의 마음을 적셔냈다. 적신 건 마음이었는데 물 맺힌 건 눈가였다. 착각 같은 장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꿈을 꿨다. 그놈의 비는 꿈에서도 지독하게 쏟아졌다. 그 비를 뚫고 장준이 달리고 있었다. 제가 기어코 말렸던 바이크 위에서. 어디 가는데. 왜 또 혼자 비 맞고 다녀. 닿을 리 없는 혼잣말을 뱉어냈다. 빗길 위에서 장준의 속도가 줄어들 생각을 안 했다. 그만. 성윤이 이를 악물었다. 차가 오고 있었다. 이장준, 그만해.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목 안에서만 들끓었다. 안간힘을 다해봐도 손가락 하나마저 뜻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울다시피 빌었다. 그런 성윤을 비웃기라도 하듯 들려오는 귀를 찢어내는 것 같은 브레이크 소리, 그리고 충돌, 암전. 동시에 성윤의 눈이 뜨였다.

   허억. 튕기듯 몸을 일으킨 성윤이 숨을 몰아쉬었다. 이마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악몽에서 깨어났는데도 창밖이 어두웠다. 신물이 올라올 것 같은 빗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좆같게도 이장준이 집에 없었다. 진짜 설마, 하는 마음에 우산 하나 쥐어 들고 밖을 나섰다. 이..씨발. 바이크가 세워져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있다는 현실을 마주한 성윤의 안에서 뭔가가 무너졌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1번을 꾹 눌렀다. 지옥 같은 연결음이 끊이질 않았다. 전화 좀 받아 제발. 자동응답기 소리가 이렇게까지 소름 끼쳤던 적이 있던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으려는 걸 겨우 붙잡아 버텼다. 산소호흡기 같은 역할을 하던 우산이 손에서 흘러내렸다. 그대로 빗줄기가 얼굴을 강타했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아랑곳 않고 이장준이 갈 법한 곳으로 무작정 내달렸다. 몸 구석구석이 죄다 젖어 들었다. 머릿속에서 고장 난 듯이 계속 꿈속의 장면만 반복 재생됐다. 과호흡이 오기 직전이었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미지근한 빗물 사이로 뜨거운 물기가 섞여들었다. 성윤은 울고 있었다. 이러다 진짜 질식해 죽겠다 싶었을 때,

 

   "성윤이형?"

 

   쉼 없이 쏟아지던 빗줄기가 돌연 멎었다. 거짓말처럼 다시 숨통이 트였다. 익숙한 온기가 몸을 잡아 돌렸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제가 등 돌렸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이장준.

 

   "너.. 너 씨발 어디 갔었어."

   "저 오토바이 중고로 내놨었는데 그게 팔렸대서 갖다 주고 오느라.. 아니 형은 왜 우산도 없이, 잠깐만. 형 울어요??“

 

   쟁알대는 목소리에 좀 전까지 사정없이 뛰어대던 심장이 우습게도 가라앉았다. 탄식같은 한숨이 흩어져 나왔다. 물에 젖어 다 식어 빠진 손을 뻗어 눈앞의 얼굴에 대 봤다. 장준이 잠시 흠칫하는 듯 했으나 성윤이 하는 대로 그냥 가만히 뒀다. 그제서야 성윤의 세상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장준의 얼굴을 더듬던 손으로 눈가를 아무렇게나 닦아냈다. 나는. 나는 너가 잘못된 줄 알고. 아니, 그러니까. 내가 아까 꿈을 꿨는데. 눈을 뜨니까 너가 없었어. 그래서.. 답지 않게 횡설수설했다. 여전히 목소리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장준이 다시 한번 성윤을 붙들었다.

 

   "형. 알겠으니까 집에 가서 얘기해요. 응? 비 진짜 많이 와요 지금."

 

   우산이 반절 넘게 성윤의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걸 알아본 성윤이 장준의 손을 밀어냈다. 너 써. 이미 다 젖은 사람 우산 씌워서 뭐에다 쓸 건데. 그러자 장준의 손이 오뚜기처럼 되돌아왔다. 그러니깐 형이 써야죠. 여기서 비 더 맞으면 백퍼 감기 걸립니다? 평소 같은 말투였지만 묘하게 더 단단한 어조였다. 너는 진짜 애가 왜. 이미 꽤 젖어버린 장준의 어깨가 고맙다기보단 짜증이 났다. 그 맹목적인 다정함이 기어코 저도 본인도 적셔 버린 게 화가 나서 안 그래도 벌개진 눈에 다시 힘을 줬다. 그 눈을 마주하기가 무섭게 장준이 우산을 잡아 내렸다. 빗줄기가 둘 모두에게 고루 쏟아졌다. 그럼 그냥,

 

   "같이 맞아요 이깟거."

   "아니, 야."

   "오늘부터 장마래요 형. 몰랐죠? 이거 소나기 아니라서 그칠 때까지 못 기다려요. 같이 맞고 가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이 붙잡혔다. 장준아 진짜 좀.. 성윤이 질린 표정으로 반대쪽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솔직하게 말해봐. 니 요즘 옛날 드라마들 돌려보지. 떨어지는 장준의 발에 맞춰 걸으며 성윤이 말했다. 아우 무드 없어. 형더러 꽤 감성적이라고 했던 말 도로 취소예요. 어쭈. 그런 식으로 영양가 없는 말이 오고 갔다. 아까 전엔 소음으로만 들리던 빗소리가 배경음이 돼가고 있었다. 물에 쫄딱 젖은 몸에 한기가 들었는데도 손에 잡히는 열기 하나로 그걸 견뎠다. 슬쩍 옆을 보자 장준이 속눈썹에 달라붙은 물방울을 눈을 깜박이며 털어내고 있었다. 그 꼴이 꽤, 우습고 귀여워서. 귀에 울리는 빗소리랑 손바닥에 달라붙은 체온이 하나같이 다 마음에 들어서.

 

   "...였네."

   "네? 빗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렸어요 뭐라구요?"

   "같이 비 맞는 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거였다고."

 

   그러자 갑자기 장준이 우뚝. 멈춰 섰다. 뭐야 왜 이래. 그 반동에 저절로 몸이 돌아간 성윤이 장준을 마주했다.

 

   "형. 옛날 드라마에 주인공들이 비 맞으면서 키스하는 장면도 나와요?"

   "갑자기? 아마 꽤 많을걸.“

 

   장준이 다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겨지는 손. 생각해보니까 별로 상관없을 것 같아요. 남자끼리는 우리가 처음일 듯. 뭐라 대꾸할 새도 없이 입술이 맞붙었다. 여즉 떨어지는 비에 반강제로 눈이 감겼다. 닿아오는 몸은 차가웠는데 입속이 온통 뜨거웠다. 타액에 빗물이 섞여들어 비릿한 맛이 났다. 부리 같은 윗입술을 이를 내어 잘근거렸다. 동시에 뒷 목이 붙잡혀 왔다. 장준이 파고드는 강도가 짙어졌다. 그에 상응하여 숨이 가빠졌다. 빗물이며 타액이며 온갖 물기가 호흡기를 죄다 막아댔다. 더는 참기가 힘들어 어깨를 붙잡은 손에 힘을 줬다. 마지못해 입술을 뗀 장준이 이마를 붙여왔다. 성윤이 벅찬 숨을 몰아쉬었다. 물에 젖어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성윤의 눈에 장준이 입술을 가져다 댔다. 입술이 그대로 굴곡을 타고 내려와 날선 코에 머물렀다. 여전히 짙게 내리 쉬는 성윤의 숨이 장준의 목덜미에 닿았다. 콧대를 지나 내려오면 다시 입술이었다. 통통한 입술이 얇은 입술을 집요하게 감쳐 물었다. 그걸 받아내며 성윤이 어렴풋이 생각했다. 올해는 세상에서 가장 긴 장마가 찾아들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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